대학로 연극 ‘별은 낮에도 있다’ 우주은의 눈빛에 반한 소극장 감동기


대학로 나인진홀 1관에서 올려진 연극 ‘별은 낮에도 있다’는 개인적으로 “올해 본 소극장 연극 중 가장 오래 남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단기기억상실증을 앓는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설정 자체는 익숙한 듯 보이지만, 극이 풀리는 방식과 무대 언어, 그리고 배우들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은 꽤 독특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스토리보다도 우주은이라는 이름과 그의 얼굴이다.

낮에도 빛나는 별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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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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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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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진홀

공연은 2026년 1월 3일부터 17일까지, 딱 2주간의 한정된 시간 동안만 대학로 나인진홀 1관에서 펼쳐졌다. 창작 연출로 완전히 처음 선보인 초연작이라는 점에서, 완성도와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특유의 현장성이 강하게 느껴졌다. 단기기억상실을 앓는 여성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기억이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이야기가 과하게 비극으로 치닫지도, 가볍게 웃음으로 흘려보내지도 않으면서 일상적 농담과 잔잔한 정서를 섞어내는 톤이 마음에 들었다.

AI 음악과 OHP,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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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무대는 기술적으로도 흥미롭다. 생성형 AI ‘Suno’로 만든 음악과, 이제는 교실에서도 보기 힘들어진 OHP(오버헤드 프로젝터)가 같은 무대 위에서 함께 숨을 쉰다. AI 음악은 괜히 “첨단 기술 썼습니다”를 과시하는 대신,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로 감정을 조용히 밀어 올리는 역할에 충실하다. OHP로 만들어지는 빛의 번짐, 손으로 직접 움직이는 필름, 투사된 이미지의 떨림은 디지털 스크린과는 다른 ‘손맛’이 있어, 기억의 불완전함과 감정의 여운을 시각적으로 잘 잡아낸다.

전체 구조는 어딘가 ‘메멘토’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으면서도, 한국식 드라마 문법과 소극장 특유의 밀도를 잘 섞어낸 느낌이다. 거창한 철학을 앞세우기보다, 관객이 “아, 저런 감정… 나도 어딘가에서 느꼈었지” 하고 따라가게 만드는 타입의 연극이다.

우주은 배우: 기억보다 먼저 남는 얼굴

이 공연을 블로그에 따로 기록해두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중에게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예, 우주은 배우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 때문이다. 그는 단기기억상실을 앓는 여성 ‘이미영’을 연기하는데,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과장된 연기나 감정 과시 대신, 아주 작은 떨림과 미세한 빈칸으로 인물을 그려낸다.

우주은
배우 우주은

무대 앞쪽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이 사람이 무엇을 잊었는가”보다 “무엇을 놓치고 싶지 않은가”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장면 곳곳에서 우주은의 눈은 매번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하는데, 그 시선의 ‘얕은 흔들림’이 이 인물이 겪고 있는 혼란과 사랑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것 같다. 대사를 다 외우고 있는 배우가 아니라, 정말로 방금 처음 듣는 이야기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반응한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반복되는 일상 장면에서, 우주은은 과한 감정선을 타지 않으면서도 “이 상황이 처음인 듯, 그러나 어딘가 조금 익숙한 듯”한 묘한 중간지점을 계속 유지한다. 이 미묘한 톤 유지가 이 작품의 감정선을 지탱하는 핵심 축이라고 느껴졌다. 그 덕분에 관객 입장에서는 이야기 구조보다 ‘사람’이 먼저 들어온다. 기억이 매번 리셋되는 인물이지만, 우주은의 이미영은 결코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의 잔상만 남아 있는 사람 같은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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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우주은, 신연우, 서도민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이 배우, 앞으로 뭐 하는지 계속 찾아봐야겠다”였다. 큰 제스처나 눈물로 관객을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작품 전체의 온도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다시 느끼게 해준 무대였다.

조연들이 만든 현실의 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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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화, 박승진 배우

주요 인물들의 서사를 받쳐주는 조연들의 존재감도 상당히 또렷하다. 남자 주인공의 주변을 둘러싼 친구, 가족, 동료 캐릭터들이 하나의 기능적 장치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처럼 무대 위를 돌아다닌다. 특히 신연우씨의 속깊은 연기도 인상깊었다.

친구 역으로 나오는 캐릭터들은 적당한 유머와 현실적인 농담으로 무거운 주제에 숨 쉴 틈을 만들어 준다. 특히 친구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관객석에서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지는데, 이 웃음이 결코 이야기를 가볍게 만드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게 인상적이다. 오히려 “이렇게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어떤 사람에게는 기억이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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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기고 웃긴 박승진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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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캐릭터나 주변 인물들은 각자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를 과잉 설명 없이 드러내며, 이야기의 감정적 층위를 하나 더 쌓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이 작품은 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기억과 관계, 가족, 친구에 대한 서사로 확장된다.

문민형 연출의 선택이 만든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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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대 인사

연출 문민형은 “기억이 사라져도 사랑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꽤 집요하게 밀고 간다. 이야기 구조, AI 음악, OHP라는 아날로그 도구까지 모두 이 질문을 중심에 놓고 선택한 느낌이다.

기억을 다루는 작품들이 종종 복잡한 타임라인과 퍼즐 맞추기 식 구조로 빠지기 쉬운데, 이 작품은 관객이 구조를 ‘해석’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인물의 감정에 머물도록 길을 내준다. 개인적으로 이 선택이 상당히 좋았다. 어떤 장면에서는 “조금 더 설명해도 좋았겠다” 싶은 지점도 있었지만, 그 약간의 여백을 관객이 각자 채워 넣을 수 있게 남겨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로 느껴졌다.

개인적인 한 줄 정리

기억은 매번 지워지지만, 관객의 머릿속에서는 우주은이라는 배우의 얼굴이 오래 남는 연극. AI 음악과 OHP가 만든 독특한 무대 위에서, 소극장다운 밀도와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가 잘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이야기보다 얼굴이 먼저 기억나는 연극, 그리고 그 얼굴의 이름은 우주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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